중소기업 피앤씨 (P&C)는 우리 수출 시장의 불모지로 불리는 아프리카에 의약품을 전문적으로 수출하는 무역회사다. 의약품만 취급하고 있는 데다 아프리카 수출로 벌어들이는 매출이 회사 수익의 상당부분인 탓에 일반인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프리카에서 위상은 상당하다. LG생명과학·종근당·중외제약·대웅제약·동아제약 등 국내 내로라하는 제약회사들이 아프리카에다 의약품을 내다팔기 위해서는 피앤씨의 판매 네트워크를 거쳐야 가능하다. 개별국가마다 시장 규모가 크지 않아 이들 대형사가 현지에다 지사를 세우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피앤씨는 아프리카 현지와 국내 제약사 간의 가교 역할을 맡고 있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제품을 공급받아야 하는 현지 제약상과 우리 제약회사에게 피앤씨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최상국 피앤씨 대표는 조만간 탄자니아에 사무소를 내 동부 아프리카로 판로를 넓힐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 피앤씨가 의약품을 수출하고 있는 아프리카 국가는 나이지리아를 중심으로 한 중서부 아프리카와 가나, 탄자니아 등이다.
나이지리아에는 지난 1997년 지사를 설립했다. 가나에는 그보다 작은 규모의 사무소를 세운 피앤씨는 올해나 내년쯤 동부 아프리카의
중심국가 탄자니아에 지사를 설립할 계획이다. 현재 이 회사에서 수출되는 의약품은 전문의약품, 일반의약품, 드링크제 등 200여개며
아프리카에서 한 해 동안 벌어들이는 매출만 500만달러에 달한다.
이 회사가 아프리카 시장에 처음 관심을 가진 것은 지난 1997년 무렵이다. 당시 아프리카의 경제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주요 국가마다 부의 불평등에서 촉발된 내전으로 수백만명이 기아에 허덕이는 것은 당시 아프리카 대륙이 처한 단적인 모습이었다.
제대로 된 사회 기반 시설조차 갖춰 있지 않은 상황에서 설립 이후 의약품만을 전문적으로 취급해온 피앤씨가 남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던 아프리카를
교역지로 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 회사 최상국 대표는 그 이유를 ‘역발상’이라는 단어로 설명했다.
“LG상사에서 상사맨 생활을 시작해 베트남 등 동남아 곳곳에 지사를 설립하던 당시 제 눈에 들어온 곳이 아프리카였습니다.
물건만 팔 수 있다면 지구 어디라도 갈 수 있다는 상사맨 특유의 근성이 발동한 거죠. 의약품은 분야의 특성상 현지에서 판매되려면 등록절차를
밟아야하는데, 많은 나라들이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절차를 까다롭게 진행합니다. 1~2년은 기본이에요.
그런데 아프리카는 보호할 산업 기반이 없으니 기간이 짧았던 겁니다.”
물론 처음부터 피앤씨가 아프리카에서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다.
초창기 피앤씨는 아프리카 진출 교두보로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염두에 두었다.
이를 위해 1997년 시장 진출 가능성을 타진해보고자 남아공으로 샘플 컨테이너를 실어 보내고 단독 전시회를 열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영연방국가인 탓에 남아공은 유럽 의약품을 제외한 다른 나라 의약품 등록규정이 지나치게 까다로웠다. 단기간 내 외산 의약품 등록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때 차선책으로 선택한 나라가 나이지리아다. 나이지리아는 인구가 1억6000만명인 산유국으로 지난 1975년 설립된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 중심국가다. 서부아프리카 지역 14개 국가 내 관세 철폐 및 자본, 노동력의 자유로운 이동을 목표로 하고 있는 서부아프리카경제공동체에서 나이지리아는 가장 영향력이 크다. 피앤씨가 나이지리아 의약 등록을 통과하면서 인근 14개 국가로의 수출은 한결 수월해졌다.
많은 연구기관마다 아프리카를 가리켜 지구상 마지막 남은 기회의 땅이라고 말한다. 길었던 내전이 하나둘씩 끝나면서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데다 아직 개발되지 않은 막대한 지하자원은 아프리카 경제의 희망이다. 일찍부터 미국, 유럽 국가들이 아프리카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온 상황에서 최근에는 일본·중국 등도 아프리카 시장 쟁탈전에 뛰어들었다. 이들은 해당 국가 정부와 현지인들에게 환심을 사기 위해 곳곳에 무상으로 전력, 도로, 항만과 같은 사회간접자본(SOC)시설을 지어주고 있다.
하지만 아프리카는 곳곳에 위험과 실패가 도사리고 있는 곳이라는 게 최 대표의 설명이다. 전체적인 사회 시스템 자체가 투명하지 못하다. 한번 결정된 사안도 정부 고위 관계자의 말 한마디에 원점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8~9년 전인가 한 아프리카 국가 정부에서 발전소 개발 사업을 국제 입찰한 적이 있어요. 제 기억으로 그걸 한국 기업들이 따냈는데, 그게 하루아침에 대통령 부인의 말 한마디에 없던 일로 된 겁니다. 발전소에 들어가는 발전기를 납품하는 업체가 로비를 해서 계약이 취소됐는데 이런 일이 다반사로 생기는 게 아프리카예요.”
시장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데이터가 부족한 것과 재고관리, 결제대금 처리 방식도 아직까지 구태의연한 수준이다. 모든 국가로의 수출이 그렇지만 아프리카 무역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을 수 있는 현지 파트너를 구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한국 의약품에 대한 현지 반응은 어떨까.
“고기능성 고가 제품 시장은 미국·유럽 제품이, 저가는 인도·중국산이 장악하고 있는 샌드위치 신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이지리아만 해도 저가 시장에서 인도 제품의 시장 점유율이 70%에 달하죠. 현지 아프리카 사람들이 그럽니다. 한국 제품은 품질은 좋으니 값이 조금만 쌌으면 한다고요. 모든 수출 제품이 그렇지만 가격을 낮추는 게 급선무라고 봅니다.”
최근 아프리카에서는 한국산 건강보조식품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 피앤씨는 건강기능식품 제조업체인 상일제약이 만든 홍삼과 알로에 드링크제를 수출해 나이지리아 현지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일찍부터 아프리카 시장에 진출한 탓에 피앤씨와 최 대표는 최근 국내 기업들을 대상으로 아프리카 진출 노하우를 설명하는 기회를 많이 가지고 있다. 현재 최 대표는 코트라(KOTRA) 아프리카트렌드포럼 내에서 의료·바이오 분과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경제, 정치적인 불안 요소는 여전합니다만 굳이 진출 국가를 추천한다면 영어를 사용하는 나라가 일하기 수월합니다. 가나, 케냐 같은 나라가 대표적인 국가죠. 지금 당장 수익을 내고 싶다면 나이지리아가 좋겠지만 3~4년 후를 생각한다면 케냐, 가나가 좋을 겁니다. 그리고 10년 이후 장기 투자로 나설 거라면 콩고민주공화국이나 앙골라를 추천하고 싶어요. 특히 앙골라는 석유매장량이 나이지리아를 능가하는 수준이죠. 코트라 같은 믿을 만한 공공기관을 통해 현지 정보를 얻는 것은 그래서 중요한 겁니다.”